











석수연 《풀풀이 모여》
Seok Su yeon 《Gathering the Soft Leaves》
2025. 10 . 01(수) - 10. 15(수) 10:00 - 19:00
예술공간 [:틈] 마포구 월드컵로 31길 6, B1
풀은 언제나 다른 풀에 기댄 채 흔들린다. 이 단순한 움직임은 도시의 풍경과 겹쳐진다. 도시의 밀도는 겹겹이 쌓여가지만, 그안에서 감정의 밀도는 성글어지고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지하철의 인파 속에서 매일 부딪히는 어깨는 물리적 접촉일 뿐, 마음의 지지가 되지 못한다. 수많은 몸이 모여 살아가는 구조가 오히려 고립을 심화시키고, 내면이 닿을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한다. 감각의 멍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드러낼 자리는 드물다.
바로 이 보이지 않는 멍의 결을 석수연은 감각으로 붙잡는다. 촉감은 닿는 순간에만 분명하다. 피부에 스치듯 잠시 머물다가 곧 사라지고,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그 사라짐은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화면에 스며든 초록의 결, 건조하며 들뜬 전분의 얇은 막, 손끝에서 남은 붓질은 그 사라짐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풍경이라 하기엔 미약하고, 기억이라 부르기엔 모호하다. 대신 여운으로 남아, 감각의 소멸 자체를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단단히 남으려 하지 않는다. 전분으로 만든 막은 쉽게 갈라지고 들뜨며, 종이 위의 초록빛은 일정하지 않고 겹치며 번지고 서로를 가리며 흐릿해진다. 완성된 결과물보다는 아직 진행 중인 과정에 더 가까운 표정으로 남고, 감각은 잔여가 되었다가 다시 흩어지며, 그 미세한 껍질을 붙잡으려는 시도가 작품의 자리로 드러난다. 종이 위에 스며드는 붓질과 건조 과정에서 갈라지고 벗겨지는 표피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감각의 궤적을 기록한다.
석수연은 회화를 그리는 이유를 ‘감각을 기억해내고 다시 상기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그 회화를 다시 물질로 옮기고자 했다. 전분으로 만든 표피들은 건조되는 과정에서 수축하거나 뒤틀리고, 두께에 따라 투명하거나 불투명하게 남는다. 살과 살이 닿을 때 어떤 부위는 금세 사라지지만, 어떤 부위는 오래도록 남듯, 감각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잔여를 품는다. 표피가 겹치면 색은 진해지고, 지지대가 없으면 쉽게 부서지며, 물에 닿으면 녹듯 사라진다. 그는 이 연약한 막들을 전시장 벽에 하나씩 붙여내며, 회화 속 장면을 다시 물질로 불러낸다. 그것은 더 이상 완성된 이미지가 아니라, 감각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콜라주이며, 감각은 그렇게 물질로 아카이브되며, 사라짐 자체마저 기록으로 남는다.
감정은 촉각의 연장선에서 발생하고, 촉각은 감정보다 먼저 반응한다. 그가 붙잡으려는 것은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촉각이 스쳐 지나가며 남긴 미세한 잔여다. 건조하며 들뜬 얇은 막은 그 잔여의 물질적 은유로, 시간 속에서 굳어지고 벗겨져 남는 표피이자 기억의 껍질이 된다. 초록의 붓질은 닿았다가 사라진 감각의 리듬을 품어내며,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감각이 어떻게 흔적으로, 흔적이 어떻게 위로로 전환되는지를 체감한다.
《풀풀이 모여》라는 제목은 그 태도의 은유다. 풀은 혼자 서지 못하고, 함께 모여 서로를 지탱하며,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고, 흔들리면서도 버틴다. 화면 속 초록의 결이 겹치고 반복되며, 들뜬 막이 남아 있는 모습은 바로 그런 움직임을 닮았다. 이 전시는 풍경의 재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풍경이 되기 이전의 감각, 말로 옮겨지기 전의 순간을 보여주며, 그것은 아름다운 기념비가 아니라 조용히 지탱하는 구조다. 너무 작고 흐릿해 곧 잊힐 듯하면서도 오래 남아 마음을 붙드는 무언가.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위로를 강요하지 않는다. 화면 위의 초록은 풀과 바람처럼 흘러가고, 표피는 가볍게 들뜬 채 공간에 놓인다. 관람자는 그것을 통해 지나가 버린 감각을 다시 더듬으며, 자신만의 위로의 구조를 발견한다. 《풀풀이 모여》는 그렇게 사라진 것들을 다시 더듬는다. 바람의 감촉, 손끝의 기억,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들. 그것들은 한 번의 닿음으로 끝나지 않고, 피부 아래와 마음속에 오래 머물며 우리를 다시 일으킨다. 몸에 드는 멍이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듯, 감정에 드는 멍도 언제나 지워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석수연은 그것을 감각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 위에 다시 관계와 위로를 쌓아 올린다.
글. 전혜수
☘︎ 작가 | 석수연 @seoksuyeon
☘︎ 기획 | 전혜수 @jeon_hyesoo
☘︎ 포스터 | 오예지 @xhdpwl
☘︎ 설치 도움 | 박선진 @art_sunjin
☘︎ 주최 • 주관 | 예술공간 [:틈] @art.space.t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