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나 《일종의 믿음 소망 사랑》
Nam Hana 《A Kind of Faith A Kind of Hope A Kind of Love : In the Flux of Becoming, Beyond the Fixity of Being》

2025.06.14.(토) - 06.26.(목) 10:00-19:00
예술공간 [:틈] 마포구 월드컵로 31길 6, B1


일종의 믿음, 소망, 사랑

‘믿음, 소망, 사랑.’ 너무 오래, 너무 자주 반복되어 이제는 거의 마모된 말들. 가장 아름다운 언어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것은 누군가의 삶을 정지시키는 명령처럼 들리기도 했다. 특히 여성에게, 특히 ‘엄마’ 라는 이름 앞에서. 익숙한 언어에 ‘일종의(A kind of)’ 라는 단서를 붙였다. 정답처럼 주어지던 가치 앞에 물음표 하나를 세우는 일. 이 이야기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믿음, 소망, 사랑은 종종 자애와 헌신, 성스러움의 이름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그 단어들은 때때로 스스로를 지우는 일이자, 반복되는 역할의 감옥이 되기도 했다. 특히 생명을 잉태한다는 능력조차 여성에게 부여된 도덕적 미덕으로 해석될 때, 그 단어들은
제 의미를 잃고, 역할만을 남겼다.

“어떤 종류의 믿음이었을까?”
“나의 소망은 누구의 시선이었을까?”
“사랑이라 불렸던 감정, 그것은 내 것이었을까?”

말보다 먼저 도달하는 감각, 사라지지 않고 누적되는 몸의 기억. 그 흔적은 때로 통증으로, 때로는 무력한 평온으로 깃든다. 몸은 잊지 않는다. 기억하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를 기억하고 있었다.

남하나의 회화는 그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녀의 화면에는 언제나 얇은 모래가 덧입혀진다. 불안정하고 울퉁불퉁한 감각, 일정하지 않은 피부. 그 위에 쌓이는 붓질은 조심스럽게, 불안한 피부를 어루만진다. 그러나 그 다정함조차 완전히
무해하지는 않다. 그녀의 손은 어루만짐과 충돌, 돌봄과 침묵 사이를 조용히 넘나든다.

이 표면은 단순한 회화의 지층이 아니다. 그 아래 잠재된 몸의 기억을 어떻게 이미지로 옮길 수 있을까에 대한 탐문이다. 화면은 다층적 감각과 관계의 잔여로 구성되며, 그 안에서 몸은 자신의 언어를 내뿜는다. 그녀의 작업은 결코 경험의 고백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여성에게 너무 이르게 부여되었거나, 오랫동안 강요되어 온 신체적 상상력 -‘엄마’, ‘기다림’, ‘희생’, ‘헌신’, ‘무조건적 사랑’- 의 껍질을 벗겨낸 자리. 거기서 무엇이 남는지를 묻는다.

남하나의 화면은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일종의 성화(聖畵)처럼 구성된다. 대칭적 구도, 아치형 구조, 반복되는 도상들은 종교적 이미지의 구조를 따르지만, 동시에 그것을 비틀고 의심한다. 이는 여성에게 투영된 자애와 성스러움, 순결의 이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작업 전반에 깔린 이콘화적 구도는 제도화된 이상, 신성시된 역할이 가진 틀의 무게를 드러낸다.

이 전시는, 그 익숙한 언어들을 다시 써 내려가는 일이다. 더 이상 단정된 이름이 아니라, 의심을 머금은 ‘일종의’ 상태로 남는 언어들. 침묵을 전제로 한 믿음, 감내를 요구하는 소망, 누군가 우리에게 주입한 사랑. 그 말들은 여전히 나를 지탱하는가, 아니면 내 안의 어떤 부분을 지워왔는가.


작가는 요가 수행과 여신 신화, 불교와 힌두교에 기반한 영성적 사유를 바탕으로 다양한 상징체계를 혼합해 낸다. 몸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기억의 통로이자 에너지의 축이며, 이 상징들은 작품 속에 스스로 구축한 신화를 통해 재해석된다. ** 물라다라
차크라처럼 가장 근원적인 생명의 자리에서 비롯된 기운은, 그녀의 붓끝에서 흔들리며 새로운 의미로 환기된다.

부제 In the Flux of Becoming, Beyond the Fixity of Being 은 존재의 고정된 틀을 넘어, 끊임없이 되어가는 몸의 흐름에 주목하게 한다. 임신과 출산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오래도록 몸에 남아 흔들리고, 기억되고,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남겨진 흔적이다. 어떤 이에게는 두려움으로, 어떤 이에게는 상실로, 또 다른 이에게는 정적으로 남는다.

남하나의 작업은 어떤 확신에 도달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가능성은 오래도록 머문다. 불확실한 감각을 붙잡고, 흐릿하게 머무는 가능성 하나를 놓지 않는 일에 가깝다. 몸은 질문을 반복하고, 기억은 언제나 뿌리 깊은 곳에서 말을 건넨다. 이야기는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몸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언어를 품고 있다. 누군가는 듣지 않으려 했고, 누군가는 듣고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불안정한 표면 위에서 비로소 울려 나오는 그 작은 말들 속에 ‘나’는 다시 한번 살아있는 존재로, 말하는 존재로 자리 잡는다.

** 물라다라 차크라(Muladhara Chakra): 요가 및 불교, 힌두교에서 말하는 일곱 개의 차크라(Chakra) 중 첫 번째 차크라로, 인간의 근본(root)과 생존(survival), 본능(instinct), 안정(stability)과 연결된 에너지 센터를 말한다.


작가 | 남하나 @mariposa_xax
서문 | 박선진 @art.space.tum @art_sunjin
그래픽 디자인 | 남하나 @mariposa_xax
사운드 | 호와호 @howaho_official
협력 | 임나래 @promemoriale 황바롬 @b_a_ind @jimi_hx
설치 | 최상기 @sangkipdh
주최/주관 | 예술공간 [:틈] @art.space.tum

남하나 《일종의 믿음 소망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