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유나 《나선들: 나선형의 기록》
Hwang Yuna 《Spirals : Notes in a Spiral》
2026. 09.16.(수) — 09.27.(일) 13:00-19:00
SPACE TUM (서울시 마포구 망원로 57, 2층)
소라 고둥이 대문 손잡이가 될 때까지
바다 밑에서 소라 고둥은 스스로 나선형 껍데기를 두르고 자란다. 이 소용돌이 형태는 이오니아식 기둥머리에 새겨지며 볼류트라는 이름을 얻었고, 유럽의 장식미술을 거쳐 스크롤워크라는 곡선 장식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지금, 그 곡선은 어느 골목 철물점 진열대 위, 대문 손잡이의 모양으로 놓여 있다. 이것이 원래 여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잊었다. 너무 익숙해서, 우리는 그 앞을 매일 지나면서도 눈여겨보지 않는다.
황유나는 길에서 이 곡선들을 만난다. 대문, 펜스, 벤치, 가로등, 촛대, 자동차 헤드라이트. 오래 그 자리에 있어 더는 눈에 띄지 않게 된 것들이다. 작가는 그것들을 원래 있던 자리와 크기에서 떼어내, 실제 크기 그대로 천 위에 옮겨놓는다. 사라지기 전에 붙잡아두려는 손짓처럼.
이 작업은 두 개의 몸짓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그리는 몸짓, 다른 하나는 자르는 몸짓이다. <어떤 시선은 파고든다>와 <구석>은 얇은 붓질을 켜켜이 쌓아 사물의 표면과 시간을 동시에 담아내고, <하나이자 모든 것일 수도 있는 이야기>는 천을 실제로 도려낸다. 방범창의 형식을 반영하여 만들어낸 무늬 속에는 흰 백조와 검은 백조가 나선과 넝쿨 사이에 숨어 있다. 낮이 되거나 빛이 등 뒤에서 비추면 이 무늬는 그림자로만 남고, 선과 악을 가르던 경계마저 흐려진다. 이 작업의 제목이 말하듯, 하나의 무늬는 하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모든 이야기일 수도 있다. 채워서 남기는 것과 비워서 남기는 것, 이 두 방식은 서로 다른 손짓이지만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 사물을 빗댄 우리는 이미 안과 밖, 양쪽을 다 갖고 있었다는 것.
천은 액자에 갇히지 않고 가장자리를 그대로 드러낸 채 걸린다. 평면과 입체 사이 어디쯤에서, 올이 풀리고 늘어진 이 느슨한 표면은 우리가 견고하다고 믿어온 사물의 형상이 실은 완결되지 않은 채로도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계는 원래 이어지는 곡선이었을지 모른다. 스크롤워크가 그렇듯, 나선은 시작과 끝이 뚜렷하지 않다. 안에서 시작한 선은 밖으로 풀려나가고, 밖에서 감겨온 선은 다시 안으로 말려든다. <하나의 펜스로부터>의 난간은 그림자와 뒤엉켜 어느 것이 철제이고 어느 것이 어둠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가 옳다고 믿어온 경계는 그럴 때 잠시 흔들린다. 전시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나선 위의 극>은 이 흔들림을 가장 큰 규모로 보여준다. 극과 극이라 여겨온 것들 — 나와 타인, 믿음과 그 이면 — 이 하나의 나선 위에 나란히 놓일 때, 그것들은 더 이상 서로 반대편에 있지 않다. 결국 하나의 선이 방향을 바꾸며 그려낸 자국일 뿐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익은 사물부터 마주하게 된다. 계단 난간, 누구나 스쳐 지났을 형태다. 그러나 걸음을 옮길수록 그 형태는 조금씩 흐트러진다. 또렷했던 윤곽은 빛무리가 되고, 어느 손잡이는 천사의 얼굴을 한 채 좌대 위에 홀로 선다. 우리는 익숙함에서 낯섦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궤적을 걷게 되는 셈이다. 그 궤적은 직선이 아니라 나선이다. 걸어 나갈 때마다 조금씩 각도를 바꾸며, 우리를 처음 보았던 자리로 다시 데려온다. 다만 이번에는 같은 자리가 조금 다르게 보일 것이다.
글. 전혜수
황유나
이미 존재하는 거리의 존재, 익숙하게 지속되어온 사물들을 눈여겨보는 발견자의 태도로 작업하고 있다. 사물이 지닌 형태와 쓰임, 시대적 맥락과 우연성이 교차하며 생명성을 갖는 시각적 이입과 상상의 경험을 탐구한다. 그 안에서 주목해온 대립되는 요소들의 경계의 지점에서 모순을 가진 채로 천의 물성을 이용한 평면 회화와 공간적 설치로 담아내고자 한다.
작가 | 황유나 @unahwangyuna
서문 | 전혜수 @jeon_hyesoo
그래픽 디자인 | 미너펙션 @minaffect
설치 도움 | 박선진 @art_sunjin
촬영 | 박선진 @art_sunjin
주최/주관 | SPACE TUM @art.space.t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