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윤, 이범용 《겹쳐진 숲의 언어》
Lee Soyoon, Lee Beomyong 《The lnterwoven Language of the Forest》


2025.5.3 (Sat) – 5.11 (Sun) 10am – 7pm
예술공간 [:틈] 마포구 월드컵로 31길 6, B1


겹쳐진 숲의 언어
The Interwoven Language of the Forest

서로 다른 날씨를 지닌 세계들

숲을 걷는 일은 서로 다른 날씨를 품은 이들이 같은 길을 나란히 걷는 일이다. 비가 오는 길과 햇살이 내리쬐는 길, 안개 낀 길과 청명한 길이 나란히 이어지고, 때로는 겹치며, 서로를 비춘다.《겹쳐진 숲의 언어》는 자연을 향해 각기 다른 감각으로 다가서는 두 작가 — 이범용과 이소윤 — 이 구축한 서로 다른 세계를 병치한다. 각자의 재료와 사고 체계에 기반하여 조성된 두 작업은, 서로 다른 궤도를 유지하면서도 자연이라는 공통된 토양을 공유한다. 짧은 레지던시를 통해 만들어진 이번 전시는 물리적 충돌 없이 이루어지는 두 세계의 병치를 통해 다층적인 풍경을 구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범용은 자연을 통해 의식의 전환과 감각의 경계를 탐색한다. 그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문턱 위에 세워져 있다. 절이나 성당의 입구처럼, 일상과 비 일상,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나누는 보더(Border)는 그의 작업 속에서 주요한 상징이 된다.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경계와 문 구조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채 통과하는 감각의 변화 지점을 시각화한다. 이범용은 종이에 수채화를 여러 번 덧발라 쌓아 올리는 방식을 사용한다. 섬세히 중첩된 한 가지 도상을 중심으로, 빛과 색을 반전시키거나 대칭 구조를 활용해, 같은 형상이 다른 차원의 공간에 뿌리를 내리는 듯한 이미지를 만든다. 익숙한 듯 처음 보는 식물의 이미지와 타일 패턴으로 둘러싸인 화면 구조는 회화적 장면이 특정한 공간의 경계를 상정하도록 구성된다. 그의 회화 속에서 자연은 의식이 확장되는 장소이며, 감각적 문턱이 드러나는 장면이 된다. 이범용의 세계는 비 균질과 균질, 생명성과 무 생명성, 자연과 인공 구조 사이의 긴장 속에서 흔들린다. 익숙한 자연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일상적 자연 인식 바깥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흐름과 질서를 감지하게 만든다.

이소윤은 흙 이라는 재료를 매개로 자연의 물성과 그 변형 가능성을 탐색한다. 흙, 유약, 광물질, 유기물 등을 혼합하고 번조하는 과정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질감과 형태를 생성한다. 이소윤의 조형물은 고정된 형태를 지향하지 않는다. 이번 신작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특히 두드러진다. 얇은 평면 형태로 제작된 도자 조각에는 도마뱀이나 페이즐리 문양처럼, 이전보다 직관적으로 읽히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작가의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적인 이미지들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 다시금 형태를 이룬다. 포슬포슬하거나 끈적거리고, 부풀거나 쪼개지는 다양한 표면들은,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자연의 과정을 재료를 통해 드러낸다. 다양하고 부드러운 톤의 유기체 형태들은 특정한 대상을 재현하기 보다 비 정형적이고 유동적인 생명 현상을 조형화한다. 그녀의 작업은 전통적 도예의 형식성을 벗어나, 흙이라는 재료가 지닌 운동성과 잠재성을 해방시키는 실험에 가깝다.

이번 레지던시는 두 작가의 세계를 조심스럽게 병렬적으로 제시한다. 이범용은 빛과 색, 경계와 대칭 구조를 활용하여 숲이라는 장소가 지닌 보이지 않는 질서를 시각화하고, 이소윤은 흙의 물성과 그 변형을 통해 생명력의 흐름을 조형화한다. 두 세계는 물리적으로 교차하지 않는다.  두 작업은 명확한 교차 없이 병치되지만, 공간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미세한 진동을 주고받는다. 빛은 흙 위로 스치고, 흙은 빛을 받아들여 형태를 수정한다. 경계는 명확하게 고정되지 않고, 층 위들은 느슨하게 중첩된다. 

서로 다른 날씨 속에서 ‘서로 다른 날씨를 공유한다’는 것은, 타인의 세계를 완전히 흡수하거나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감각과 리듬을 잃지 않은 채, 조심스레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이범용은 정신의 언어를, 이소윤은 물질의 언어를 구축한다. 두 작가의 언어는 단일한 문장으로 합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숲이라는 열린 공간 안에서 서로를 반사하며 느슨하게 얽힌다.《겹쳐진 숲의 언어: 서로 다른 날씨를 공유하는 법》은 두 세계가 각자의 궤도를 유지한 채 서로를 조용히 스치는 순간들을 담아낸다. 우리는 이 숲을 걷는다. 각자의 날씨를 품은 채. 그리고 어딘가에서,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글. 전혜수


기획 | 전혜수 @jeon_hyesoo
작가 | 이소윤 @_lee_soyun , 이범용 @bumyongyi
그래픽 디자인 | 이소윤
주관 및 주최 | 예술공간 [:틈]

이소윤, 이범용 《겹쳐진 숲의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