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록 《얼룩말식 불온한 사고》
Lee Chorok 《zebra - style thunderous idea》
2025.08.01.(금) - 08.10.(일) 10:00-19:00
예술공간 [:틈] 마포구 월드컵로 31길 6, B1
1. 괴담은 귀엽고 불운은 없다
* 객사한 그의 딸은 여행을 갈 때마다
유서를 쓰는 여자가 되었고, 그 여자는
다시 객사할 만한 딸을 낳았으며 언제나
주머니 속 가위를 넣고 다니는 인간으로
자랐다. (이초록의 도록)
** 스스로 머리 자르지 않기
나보다 키가 큰 식물 기르지 않기
영물을 집 안에 들이지 말기
누구의 것인지 모를 옷과 물건 사지 않기
허름한 옷을 입어 복을 내쫓지 말기
쓰던 지갑을 선물하지 않기
밤에 손톱을 깎지 않기
이 나간 그릇은 당장 버리기
문지방 밟지 않기
죽은 식물과 조화 가지고 있지 않기
지켜야 할 것 같은 수많은 규칙이 있다. 불길한 징조와 불운을 부르는 습관들. 이들은 늘 보이지 않지만 행운이 올 길을 막아내는 형체가 된다. 갑작스러운 사고의 경험* 이후, 이초록의 가족 내에서 그동안 복을 지키는 행동들이 중요시됐고 보이지 않는 규칙은 불운한 사건의 당위가 됐다. 따라서 그들은 불운을 초래하는 금기들을 지킴으로써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고 찾아올 복을 반기는 속신행위(俗信行爲)를 습관으로 삼았다. 하지만 ‘괴담은 귀엽고, 불운은 없다.’라고 말하는 이초록은 이들과 달리 불안의 징후**들을 수집한다. 가족 내 규칙에서 불온한 방향으로 체화된 감각은 작가가 만들어내는 작품으로 녹아든다.
2. 괴물 백과사전
* <한국 괴물 백과> - 귀구 에 대한 설명 73p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알록달록한 무늬가 있는 개와 닮은 짐승이다.
눈이 빨갛고 밤에 나타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두 마리가 쌍으로 다닌다.
보통 개와 달리 짖거나 움직이는 일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으며
그저 꼼짝하지 않고 위엄있게 있으면서 가만히 지킬 뿐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어느 집을 지키라 명령하면 밤마다 찾아가 소리 한 번 안 내고 한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버티며 온갖 일이 벌어져도 날마다 꿋꿋이 나타났다.
이초록은 자신의 주변을 감싼 허구의 이야기들을 다시 되짚어본다. 앞서 나열한 규칙을 늘 메모장에 지니고 다니지만 지키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다. 이따금 메모장을 내려보며 이 금기의 문장들에 등장하는 사물과 연상되는 상황을 떠올려보곤 한다. 그렇게 짜여진 화면은 당연하게도 금기를 행하는 화면이다. 이초록은 본인의 일상 행위와 이러한 상상을 혼재한 불온한 화면을 자각하지 못한 채 늘 만들어내곤 한다. 다만 저항적인 표현은 아니다. 괴담을 귀엽게 여긴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는 늘 금기의 이면을 애정이 어린 손길로 다듬어본다. 이 금기를 지킴으로써 위로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작가는 괴담의 양가적인 특징을 인식하며 신작 <밝은 밤의 광장>(2025) 와 새롭게 터득한 재료인 도자로 만든 도깨비 연작을 만들어냈다.
신작을 구상하며 읽은 <한국 괴물 백과>는 규칙과 금기를 형상화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부분의 괴물들은 귀구*와 같이,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고 기다리거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그것들은 그냥 조금 배고파하고, 조금 장난기가 있다. 그래서 속신 행위의 금기와, 괴물은 같은 존재라고 작가는 생각했다. 도자기로 구워낸 괴물들은 애정이 담긴 작가의 시선이 드러난다. 그가 만든 괴물들은 늘 금기의 바깥, 규칙의 경계에서 조용히 대기한다. 그들은 규칙을 깬 인간에게 비극적인 등장을 하기 위한 기다림이 아닌, 그저 기다리는 세계에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넘나들 수 있는 경계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어쩌다 한 번씩 넘어오는 것뿐이다. 보기엔 괴이하지만 어쩐지 귀엽고, 연민을 부르는 형태. 발끝에서부터 관찰된 상상의 존재들은 신발처럼, 눈처럼, 실마리처럼 어딘가 남겨진다. <밝은 밤의 광장>(2025)의 정지된 화면은 천막이라는 경계 뒤에 대기하는 괴물들을 가늠케 한다. 파노라마와 같이 길게 늘어진 장면은 이전 작업의 단면적인 방을 넘어, 괴물들이 조용히 대기할 수 있는 새로운 광장으로 확장된다. 불온과 애정이 뒤섞인 장소는 작가에게 이제 내밀한 방의 공간이 아닌 광장의 형태로 넓어진다.
3. 방의 호더
슬픈 표정의 현관을 열어
보는 일. 실내화로 갈아신자마자
그것은 방 한구석에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응시한다.
*가졌다고 생각해서, 가진 것처럼 느껴서, 가질 수 있다고 착각해서 그린다. 매만진다. 만든다, 손에 쥔다. (중략) 우리에게 소유는 단순히 가진 상태가 아니다. 미묘한 차이를 확인하고, 버려야 할 것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색감과 무늬를 감상하며 무엇과 함께 어디에 어떻게 놓을지 고민한다. 가진 후에도 가지기 전처럼 고민하고, 가지기 전에도 가진 것으로 착각한다.
- 양희윤과의 2인전 [핑킹가위 증후군] 전시 글에서
앞서 말한 광장과 대비되는 방의 이미지는 이초록의 회화와 전시 공간에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배경이자 장치이다. 실제 그의 방은 어릴 때부터 모은 수집품, 심지어 물려받은 선대의 수집품들로 둘러싸여 있다. 말 그대로 ‘호더’의 기질*을 물려받은 것이다. 어느 날엔 본인이 모은 모든 것들이 짐처럼 느껴져 예민해진 경험을 공유해 주었다. 그날 집이 활활 타오르는 꿈을 꾸며, 모아온 이 물건들에게서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이초록에게 방이란, 모든 것을 모아두고 싶은 공간이자, 모든 것을 두고 떠나고 싶은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완전한 소유물’이란 생각이 추상적 개념이라고 늘 말해왔다. 이는 본인이 떠났을 때 남겨질 것들을 생각해서가 아닐까.
방을 그리는 작업에서 이초록은 어딘가에 남겨진 사물 혹은 인물을 먼저 주시한다. 그는 남겨진 존재들을 위해 방을 짓는다. 마치 인형을 사고 애정을 둔 탓에, 인형이 머무를 집까지도 마련해주는 마음으로 말이다. 소파에 두고 간 날개, 다리만 보이는 인물, 책상에 남겨진 바나나, 칫솔 등. 작가에게 방은 단순한 실내 공간이 아닌 남겨진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리는 쇼케이스이자 그 대상의 감정을 보호해 주고픈 쉘터로 작용한다. 그림에서 나타나는 이초록의 호더 기질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방의 사물로 변환하여 수집하는 과정에 있다. 사물에 맞는 방을 상상하며 방의 구조를 모은다. 전시 공간에 본인의 가구를 가져와 공간의 특징을 방으로 변환하는 이유 또한, 그나마 ‘완전한 소유물’이라 생각하는 작품들에 맞춰 그들을 위한 방을 지어주고픈 방의 호더 기질이 이어진다.
4. 얼룩말식 불온한 사고
이초록의 회화는 얼룩말의 무늬처럼 불온한 색들이 나란히 공존하는 구조를 가진다. 얼핏 보면 반복되는 도상이 하나의 질서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미묘하게 어긋나는 틈과 변칙이 존재한다. 얼룩말의 줄무늬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과학자들의 오랜 연구는 아직도 완전히 결론 나지 않았다. 포식자의 눈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집단적 착시, 해충 퇴치, 체온 조절, 사회적 신호 등 다양한 가설들이 제시되지만, 그 어느 것도 단일한 정답이 되지 못한다. 명확히 규명되지 않는 이 표피의 이유는, 하나의 패턴으로 보이면서도 해석이 분기되는 이초록의 작업들과 닮아 있다.
방과 괴물, 금기와 수집, 애정과 불안은 각각 얼룩처럼 화면 위에 혼재되어 때로는 겹치고 때로는 밀려나며 하나의 껍질을 이룬다. 포식자의 눈으로 얼룩말의 군집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개체의 무늬가 겹쳐진 착시 작용이었던 것과 같이, 작가의 회화 역시 불온한 이야기들이 서로 기대며 조용히 엉킨 구조를 이룬다. 이초록이 감지하는 세계는 하나의 선형적인 이야기로 수렴되지 않는다. 다만 그가 감각하고 수집한 잔재들이 중첩된 얼룩처럼 펼쳐져, 서로 다른 사건들이 불온하게 겹치는 사고의 장을 만든다.
글. 무수민
작가 ⋰˚ 이초록 @i.chorock
기획/서문 ⋰˚ 무수민 @musu.minn
도자 기술 도움 ⋰˚ 은나코 @eunako_ceramics
설치 도움 ⋰˚ 양희윤 @yunhiywork
촬영⋰˚예술공간 [:틈] @art.space.tum
주최/주관⋰˚예술공간 [:틈] @art.space.t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