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박형진, 정은별 《돌 빛 벽》
Kim Seonyoung, Park Hyeongjin, Jung Eunbyeol
《The Stone, The Light, The Wall》


2025.05.29.(목) - 06.11.(수) 10:00-19:00
예술공간 [:틈] 마포구 월드컵로 31길 6, B1


“미시 세계로 들어갈수록, 시간은 더 이상 직선이 아니다. 결국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세상을 보는 우리 자신의 희미한 시각 때문에 발생한다.”–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에게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미시적 차원에서 시간은 무수히 많은 방향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물질적 실체다. 거시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물질의 적층이나 빛의 이동을 구획하는 개념으로 수많은 시간을 가늠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시야에서 인간, 돌, 나무처럼 명확히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질로, 이들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은 사건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단일한 시간선 위에서 내려온다면 물질과 사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무엇도 영원히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땅에 뿌리 내린 나무 역시 사건이다. 나무가 인간에게 기우는 순간이 독립적인 물질일 수도 있다. 인간과 나무 그 자체보다, 나무와 인간이 가까워지는 짧은 시간이 더 영속적일 수 있다. 사건이 물질이고 물질이 사건일 때, 작은 세계에서 어떤 물질/사건은 다른 사건/물질의 이전과 이후에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돌탑을 쌓듯 시간은 층층이 중첩된다.

《돌 빛 벽》은 각자의 세계를 탐구하는 세 작가의 교차하는 시간성을 담는다. 김선영, 정은별, 박형진은 동양화를 통과하는 고유한 방식으로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을 감각한다. 각 세계 안에서 시간은 어긋나고, 모순을 응시하며 미끄러지다 다시 작은 단위로 나뉘고 모인다. 김선영은 단일 주체라는 환상 내부에서 균열을 포착한다. 김선영의 화면 안에서 발견되는 어긋난 형태와 단차는 같은 세계 안에 공존하는 조각난 시간들을 지시한다.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종이인 장지의 물질성은 분리되고 겹치지만 결코 하나의 물질로 돌아가지 않아 시간의 차이가 축적되는 표면으로서 지지체가 된다. 아주 쨍한 빛이 이해하기 어려울만큼 계속 흐르는 그림 위에 막이 얇게 덮이듯이, 확실해 보이는 현재 위에 알 수 없는 현재가 포개어진다. 

정은별이 소환하는 파열의 순간 역시 동시에 여러 가지의 다른 가능성을 가진 잠재적 시간이다. 정은별은 사소한 이야기의 수많은 미래들을 내러티브적으로 구상하며 입체나 평면의 방식으로 ‘다음 순간’을 옮겨 놓는다. 그의 회화는 실재하는 물질(사건)에서 빌려 왔거나 재구성된 조형을 통해, 예기치 못한 진행 중간의 분기를 포집한다. 정은별의 비선형적 미시 서사는 지속적으로 움직이면서 화면을 벗어나고자 하는 동력을 끊임없이 확장한다. 이들은 모여서 서로의 움직임을 지시하기도 하고 익숙한 방식과는 다르게 벽에서 띄워져 우리의 앞까지 직립하기도 한다. 동시에 이들의 필연적 연약함은 어떤 사건/물질이 발생하기/존재하기 직전의 불안한 상태를 드러낸다. 사소해 보이도록 정교하게 설정된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계속 관객의 시선 바깥으로 이동한다. 

정은별의 시간이 분열 직전의 위태로운 평형 상태에 놓여 있다면, 박형진의 시간은 연속되는 사건을 고유한 단위로 환원하여 물질로 만드는 수행적 작업을 통해 촘촘하게 쌓인다. 박형진은 도시 재개발 예정지에서 관찰한 호두나무의 생장과 그 변화의 기록을 색과 밀도로 옮긴다. 봄에서 여름으로 이동하는 빛과 색의 변화,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무의 움직임은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의 틀 안에서는 지나가는 사건이지만, 독립적인 미시 세계로서 박형진의 작은 격자 하나 하나는 연속되는 현재에서 실재하는 물질로 변화를 포착한다. 세 명의 작가가 구축한 시간성과 언어는 겹겹이 쌓인 종이와 동양화의 형식 위에서 실현되며,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미시적 시간들은 강력한 관찰자를 얻는다. 이때 작품은 보이지 않는 흐름을 포착하는 지각적 장치로 기능한다. 


글. 김재아 (독립 큐레이터)


작가 | 김선영 @to_the_zero, 박형진 @eeeeeeehhh, 정은별 @eunbyul_jjung
기획 | 김재아 @_thebestdriver 전혜수 @jeon_hyesoo
그래픽 디자인 | 예술공간 [:틈]@art.space.tum
주최/주관 | 예술공간 [:틈] @art.space.tum

김선영, 박형진, 정은별 《돌 빛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