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선 《초콜릿, 종이와 휴지, 남은 찻잔》
Ahn Jinseon 《Chocolate, Paper, Tissue, and a Cup》


2026.3.31.(화) - 4.1.(수) 13:00-19:00
SPACE TUM (서울시 마포구 망원로 57, 2층)



제목 | 《초콜릿, 종이와 휴지, 남은 찻잔》에 대한 몇 가지 단서
기록자 | 제삼기획(강다원X이유민)
일시 | 2026년 4월 1일 19:00
장소 | 서울 마포구 망원로 57 2층

남겨진 것 | 접힌 냅킨과 종이, 만들어진 초콜릿, 흐르는 영상, 바 테이블과 선반, 48시간

행동 유형 | 관객에게 건네는 레시피 카드와 초콜릿과 페퍼민트 티, 반복 재생되는 무음의 영상, 고동색 바 테이블과 접힌 채 진열된 냅킨과 종이들

하나. 접힌 냅킨과 종이

 고동색 바 테이블 하단의 선반에는 각각의 방식으로 접힌 냅킨과 종이가 진열되어 있다. 냅킨은 다른 방식으로 접혔다. 그러므로 이 냅킨의 무리는 각각 다른 손이 만든 결과일 것이다. 이 공간에 펼쳐진 장면은 평범한 일상에서, 어쩌면 공간이 위치한 망원동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커피숍의 풍경과도 같다. 커피나 차를 주문하고 마련된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어떤 날. 심심한 손은 하염없이 냅킨을 접는다. 그러나 낯설지 않은 풍경의 냅킨은 다 마신 찻잔과 함께 반납되고, 특별히 잘 접은 형태가 아니라면 그대로 버려질 것이다. 그러나 이곳 바 테이블의 선반 위에 냅킨은 진열되어 있다. 진열일까, 아니면 유기된 것일까? 초콜릿과 함께 전달받은 어떠한 종이를 펼친다. 그곳에는 ‘《남겨진 흔적과 조각》을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다. 

 ‘남겨진 흔적과 조각’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조각’을 ‘piece’로 해석해야 할지, ‘sculpture’로 읽어야 할지 의문이 생긴다. 부수적으로 딸려 온, 보조적 사물인 냅킨은 ‘piece’처럼 어떤 환경을 구성하는 전체의 일부인 듯하다. 하지만 제각각의 방식으로 접힌 이 사물들은 부분이라기보다, 가벼운 조각이다. 작품으로 여겨지는 조각을 떠올렸을 때 전통적으로, 조각은 부피를 차지하고 그러므로 무게가 있을 것이라는 유추를 동반한다. 상상 속의 조각은 물질을 깎고 다듬으며 제작자의 머릿속 형상을 투영시키는 존재인 듯하다. 그러나 ‘남겨진 흔적과 조각’은 특정 지시 하에 진열되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접은 이의 의도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이 무수한 냅킨들 사이에서 아직 안진선의 의도를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이제는 ‘레시피 카드’라고 부를 수 있는 종이에는 ‘초콜릿’에 관한 설명이 있다. 초콜릿은 이 공간에서 어떠한 자리를 점유하고 있을까. 그리고 과거 안진선의 행위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둘. 만들어진 초콜릿

 그러고 보니 안진선이 참여했던 기획전 《(non)Blind-Spot》(2026, PS Center, 서울)에서 보여 준 <밀어내기>(2025)와 <관찰을 위한 벤치>(2025)의 색상은 이곳의 바 테이블과 초콜릿 색상과 흡사했던 것 같다. 작품은 벤치에 한 명이 앉으면, 다른 한 사람이 벽 레일을 따라 설치된 거대한 조각을 밀면서 발생하는 진동을 느끼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진동을 느낀다’라는 표현에는 반복적인 떨림이라는 운동과 더불어 불안의 정동이 포함된다. <밀어내기> 작업이 벽과 바닥의 소음의 떨림, 관객의 움직임으로 전달된 불안이었다면, 이 초콜릿은 그간의 작업과 어떤 관계에 놓이는가?

 관객은 거대한 조각을 직접 움직이며 안진선이 전하고자 했던 불안을 체험했다. 그러나 초콜릿은 그가 제작했던, 거대하고 무거운 조각보다도 가볍고 쉽게 녹는다. 가볍고 유연한 조각. 여기에서 첫 번째 단서였던 접힌 냅킨과 종이를 떠올린다. 무엇보다도,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은 체내에 흡수되기 마련이다. 모습의 변화를 넘어 흔적도 없이 조각은 사라진다. 그리고 관객의 몸으로 침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을 은유한 초콜릿은 정서적 안정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서 초콜릿은 안진선이 전달하려 했던 압축된 불안이지만, 동시에 녹아 없어지는 불안의 다음 상태를 암시한다. 불안은 도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파이프, 철근, 합판에서 소멸하는 초콜릿으로, 안진선은 더 작고 연약하지만 관객의 몸속 어딘가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는 흔적을 남긴 것일까?

셋. 흐르는 영상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어떠한 소리나 자막도 없이 손의 움직임만이 재생된다는 점에서 이 자리에 적막을 더한다. 접힌 냅킨과 종이, 초콜릿은 관객에게 행동을 지시하거나, 그 행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이것은 관객에게 차와 초콜릿을 대접하는 기묘한 이 공간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유로운 감상을 유도하는 영상이다. 불안에 빗댄 초콜릿을 먹는 행위와 초콜릿을 하나의 접시에서 또 다른 접시로 옮기는 행동은 묘하게 어긋난다. 뚜렷한 목적이 부여된 냅킨과 초콜릿, 혹은 가구와 달리 고요한 영상은 공간을 크게 점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둘. 만들어진 초콜릿’에서 언급했던 <밀어내기>나 작가가 마치 도시를 부감 俯瞰으로 관찰해, 작은 모형으로 연출했던 <City Diorama>(2021)의 중간처럼 보인다. 거대한 건축물부터 작은 생명체까지, 작가에게 도시라는 장소는 불안을 일으키는 환경이었다.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작게 다듬고 가지런히 배치하는 일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을 손아귀에 쥐는 일처럼 보인다.

 타인에게 준 초콜릿이 그간 안진선이 제작해 온 조각의 형태와 닮아 있었다면, 영상 속에 등장하는 초콜릿은 각기 다른 모습이다. 이 영상에는 총 4개의 접시가 등장하며, 마지막에는 빈 접시로 끝난다. 마치 초콜릿이 체내에 흡수되어 형체가 사라지듯, 비어 있는 접시는 불안이 사라진 자리를 의미하는 듯하다. 공간에 남겨진 것은 냅킨, 종이, 가구, 그리고 영상이다. 반대로 사라지는 것은 안진선이 전달하고 싶었던 처음의 감각일 것이라고 유추한다. 

넷. 바 테이블과 선반

 바 테이블은 두 개다. 합판으로 만들어졌고, 초콜릿색 무광 페인트가 덧칠해져 있다. 손끝으로 표면을 훑으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전해진다. 테이블 상판의 모서리는 어딘가 비스듬하다. 예리하면서도 매끄러운 각도는 접시 위에 놓인 초콜릿 조각의 형태와 유사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유사성이 우연에 의한 것인지, 혹은 가구의 형식이 초콜릿의 형태를 참조하여 구성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테이블 하단의 선반으로 이동한다. 

 테이블 아래 선반에는 <남겨진 흔적과 조각>이 쌓여있다. 사건 첫날, 이곳은 아마 비어 있었을 것이다. 이후 관객이 초콜릿을 먹고, 종이를 접고, 찻잔을 다 비운 뒤 이 선반의 어딘가에 내려놓기 시작하면서 풍경은 변화한다. 일상의 카페에서 빈 잔을 반납하는 행위는 대개 사용의 종료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는 동일한 행위가 사물의 재배치로 이어진다. 내려놓는 사람은 이미 놓인 흔적을 살피며 자신이 내려놓을 위치를 결정해야 한다. 누군가 접어둔 냅킨 옆에 혹은 누군가 남긴 찻잔 옆에 자신의 것을 두는 일이다. 그 결과 선반 위에는 서로 다른 형태와 간격이 남겨진다.

 이 테이블의 이름은 <조각을 위해 비어있는 바 테이블>이다. ‘조각을 위한 가구’라는 명칭 앞에서 다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 테이블은 조각이 아닌 단순한 받침대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일까? 동시에, 이 위에 쌓이는 ‘흔적과 조각’의 집합은 하나의 형식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내려놓는 행위 이후 생성된 배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또 유지된다. 이 변화를 조각이 형성되는 과정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 혹은 조각이 성립하는 조건의 일부로 보아야 하는지는 현재로서 확정할 수 없다.

다섯. 48시간

 이 사건은 2026년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단 이틀 동안 벌어졌다. 달력 위에서 보면 한 달의 마지막과 새달의 첫날이 맞닿은 자리다. 이틀이라는 시간은 구조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보다는, 일시적으로 생성되고 소멸하는 상황에 가까운 조건이다. 따라서 이 시간 설정은 사건의 물질적 구성과 어떤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안진선은 단단한 재료를 통해 도시의 진동이나 불안과 같은 상태를 물리적 구조로 실체화 해왔다. 반면 이 곳에서는 초콜릿이 주요 재료로 사용된다. 초콜릿은 외부 조건에 따라 쉽게 변형되거나 소멸할 수 있는 물질이다. 재료의 변화와 함께, 억누르거나 밀어내야 했던 거대한 진동은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작은 조각 단위로 재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사건은 종료 시점을 전제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초콜릿은 섭취 과정에서 빠르게 형태를 잃고, 선반 위에 남은 사물들 역시 48시간 뒤에는 해체될 것이다. 이 조건에서는 결과물의 지속성보다 과정의 발생과 변화가 우선한다. 결국 그가 목표로 한 것은 영원히 보존되는 형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불안을 견고하고 튼튼한 모양으로 가두기보다, 부피를 줄여 음미하고 흡수할 수 있는 상태로 바꾸려는 시도인 것일까? 

종합 의견 | 안진선의 동기와 행보

 5개의 단서를 수집했다. 접힌 냅킨과 종이, 만들어진 초콜릿, 흐르는 영상, 바 테이블과 선반, 그리고 48시간. 각각의 단서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안진선이 초콜릿으로 의도한 것이 무엇일까?

 《초콜릿, 종이와 휴지, 남은 찻잔》이라는 사건 뒤에서 안진선의 궤적을 돌아본다. 안진선은 도시라는 거대한 환경이 신체에 남긴 불안이라는 모호한 감각을 구체적인 사물, 예컨대 쇠 파이프, 지관통, 합판과 같은 주위의 익숙한 사물들로 번역해 왔다. 주목할 점은 지속적으로 그가 시도해 온 전시장 내부로 관객을 초대하는 방식이다. 작가가 설계했던 도시의 잔해 사이를 걸었던 관객은 이제 초콜릿을 손에 쥔다. 초콜릿은 섭취되는 순간 형태를 잃고, 접힌 냅킨과 종이는 선반 위에 남겨지며 다른 흔적들과 함께 놓인다. 이 과정에서 불안은 부정적인 결과라기보다, 조건과 행위에 의해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상태로 작동한다. 이러한 점에서 안진선의 작업은 견고한 형상을 구축하는 방향에서, 신체를 통과하며 변환되는 감각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체의 전환은 그동안 작가가 탐구해 온 ‘불안’의 정동을 외부의 물리적 구조물에서 관객의 내밀한 감각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도약이다. 작가가 설계한 것은 불안을 고정된 형태로 가두는 구조가 아닌, 몸을 통과하고 타인의 시간과 겹치며 분산되는 과정에 가깝다. 형태가 사라진 자리에는 몸속에 흡수된 감각과 그 기억이 남는다. 안진선이 설계한 이 일시적인 점유가 끝난 뒤에도, 그의 실험은 일상에서 더욱 유연하고 단단한 연결망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작가가 바라는 불안의 흐름은 완전한 삭제가 아닌, 타인과 함께했을 때 형성되는 공유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불안을 지우는 대신, 그것을 잘게 쪼개어 나눠가지는 완만한 방식을 택한 셈이다. 그리고 이것이 안진선이 초콜릿을 만든 이유에 대한 현재로서 가장 유효한 추론이다. 



작가 | 안진선 @ahn_jinseon
서문 | 제삼기획 @thethirdplan_(강다원 @daoneekang , 이유민 @dlt.hd)
그래픽 디자인 | 이승연 @mugiryok
도자 제작 | 강경숙 @kks_0731, 안형배
몰드 제작 | 안성무 @sungmoo_ahn
설치 및 도움 | 정다현 @sep_dh
촬영 | 고정균 @goh_jk
주최.주관 | SPACE TUM @art.space.tum

안진선 《초콜릿, 종이와 휴지, 남은 찻잔》